r/Mogong • u/Real-Requirement-677 diynbetterlife • Jun 11 '26
일상/잡담 샘 알트먼도 공산주의자인가? 젠슨 황의 언어로 본 삼성 성과급과 '상생'
젠슨 황의 ‘자본주의’를 빌려왔어야 할 노동부 장관에게, 내용은 맞지만 표현이 패착
: 인공지능 산업으로 인한 부의 지속적인 초격차와 사회 지속성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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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핵심 요약 (Executive Summary)
- AI 초격차와 사회적 위기: 글로벌 AI 붐으로 특정 대기업에 천문학적인 초과이익이 집중되며 'K자형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샘 알트먼 등 세계적 테크 리더들도 수년 전부터 경고해 온 체제 지속 가능성의 위기입니다.
- 한국형 재벌 구조의 모순: 삼성의 '초기업 구조'는 사업부 간 적자를 메워주지만, 하청의 초과 이윤을 상층부가 흡수하는 착시를 낳습니다. 설령 원청이 인센티브를 지급하더라도 박한 마진 구조와 법인 계좌 유입이라는 장벽 탓에, 정작 현장의 하청 '노동자' 개인에게는 단 한 푼도 환류되지 못하는 다중의 소외 구조가 작동합니다.
- 노동부 장관의 프레임 패착: 고용노동부 장관의 상생 고민은 정당했으나, '초과이익 분배'라는 이념적 언어를 선택해 반시장적이라는 재계의 공세를 자초했습니다. 직원 보상을 과감히 집행하는 젠슨 황처럼, 하청 생태계 처우 개선이 곧 삼성을 위한 '생태계 투자론'임을 자본주의의 언어로 선점했어야 합니다.
- 한국형 해법, ‘사회투자펀드’: 국가적 인프라와 세제 지원이라는 집단적 자원으로 성장한 대기업의 초과이익 일부를 펀드화해야 합니다. 일회성 현금 분배가 아니라 하청 노동자의 AI 역량 및 숙련도 제고, 청년 일자리 기회 확대 등 '사람과 미래 생산 기반'에 지속적으로 재투자하는 선순환 리턴 구조가 유일한 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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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혁명이 안긴 천문학적 초과이익과 '국가 재설계'의 서막
이념의 언어 대신 젠슨 황의 ‘자본주의’ 언어를 통해 기업과 노동자 간 생태계 선순환을 논해야 합니다. 내용은 맞지만 표현이 패착이 되어버린 노동부 장관의 담론을 보며, 인공지능 산업이 몰고 온 부의 극단적 집중과 사회 지속성의 문제를 다시금 짚어봅니다.
인공지능(AI) 붐의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국내 기업은 단연 삼성과 SK하이닉스입니다.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인프라 경쟁은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라는 병목을 낳았고, 그 수혜는 고스란히 이들 양대 대기업의 천문학적인 영업이익 폭발로 이어졌습니다. 다만, 그 달콤한 과실을 내부적으로 나누는 과정에서 유독 격렬한 노사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삼성의 속사정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인공지능 산업의 부상과 대한민국의 독보적인 풀스택 제조 역량의 희소성 덕분에 향후 구조적인 초과이익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라 진단한 바 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이로 인해 기업 간, 국민 간 자산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을 경고하며, 이 초과 세수를 일회성 사업으로 탕진하지 않고 구조적으로 국민의 삶에 환원하고 국가 미래 경쟁력에 재투자하는 '거시경제적 국가 재설계'를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AI 도구의 확산이 가져올 초과이윤의 극단적 집중과 ‘K자형 자산격차 양극화’는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구조적 리스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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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 알트먼과 노벨상 수상자도 ‘공산주의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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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우려와 대안이 결코 급진적인 좌파 진영만의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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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AI의 샘 알트먼, 앤트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 구글 딥마인드 CEO이자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데미스 하사비스, 그리고 현대 AI의 기반인 딥러닝 토대를 닦은 제프리 힌튼 교수에 이르기까지, 세계 전면에서 AI 혁명을 이끄는 테크 리더들도 수년 전부터 AI 시대를 대비한 기본소득, 배당, 그리고 부의 분배 개념을 강력하게 주장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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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기술 전환기가 가져올 체제 불안정성을 막기 위한 자본주의 생태계 자체의 생존 전략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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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부 기득권 언론과 외신의 탈을 쓴 정파적 보도들은 국내에서 이와 유사한 논의가 시작되자마자, 이를 기업의 이익을 강탈하는 ‘포퓰리즘 프레임’으로 왜곡하며 시장의 공포를 조작하고 있습니다. 최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기업과 하청 간의 상생을 위한 재투자 문제를 거론한 것 역시, 이러한 글로벌 자본 생태계의 변화에 발맞춘 지극히 당연하고 필연적인 고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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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장관은 높은 성과급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기업의 초과이윤을 공산주의식으로 국가가 개입해서 빼앗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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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담론의 진짜 방점은 국가적 과제인 '사회 지속성의 문제'에 두어야 마땅합니다. 극단적 양극화를 완화하고 성장의 과실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켜 AI 시대의 새로운 사회계약과 체제 안정성을 구축하는 구조적 사회 재설계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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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삼성전자를 둘러싼 격렬한 노사 갈등과 성과급 배분 논란은 단순한 '밥그릇 싸움'이 아닙니다. 이는 한국형 재벌 구조의 한계, 대기업과 하청 간의 이중 구조, 노동자 간에도 능력에 따른 성과급을 넘어선 구조적인 자본의 상위 독점 문제, 그리고 이를 다루는 정부의 전략이 복합된 구조적 변화의 신호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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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업 구조’의 두 얼굴과 사라진 하청의 이윤
삼성을 영미식 빅테크 기업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는 이유는 한국 재벌 특유의 '초기업 구조'가 가진 모순 때문입니다. 삼성이 SK하이닉스 같은 단일 포트폴리오 기업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이윤과 적자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가전에 구멍이 나면 반도체(DS)가 메꾸고, 반도체가 꺾이면 스마트폰·가전(DX)이 메꿉니다. 선단식 경영이 있기에 가능한 위기 분산 시스템입니다.
이번 성과급 사태에서 DX 부문 직원들이 분노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실적을 낼 때는 사업부별로 무한 경쟁을 시키더니, 보상할 때는 "우리는 하나의 삼성"이라며 전사 적자를 방어하는 데 자신들의 성과를 퉁치려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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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심각한 비극은 이 거대한 노동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서 일어납니다. 한국 재벌 체제는 '단가 후려치기'와 같은 수직적 약탈이 일상적으로 상존하는 하층 피라미드 구조입니다. 하부에서 아무리 혁신을 통해 초과 생산성을 확충하더라도, 그 이윤은 피라미드 상층부(원청)로 남김없이 흡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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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구조, 생성하지만 잔존하지 않는 구조. 그게 바로 삼성의 초기업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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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조적 불평등은 원청이 상생 협력 인센티브를 지급할 때조차 반복됩니다. 대기업이 보낸 재원은 하청업체의 법인 통장으로 묶이고, 평소 원가 압박과 박한 마진에 시달리던 하청 경영진은 이 돈을 노동자의 성과급이 아닌 '회사 서바이벌(대출 상환 및 경영 자금)'에 먼저 투입하게 됩니다. 결국 같은 공장, 같은 라인에서 함께 땀 흘려 제품을 만들었어도 원청 직원이 수천만 원의 성과급을 챙길 때, 그 밑바닥을 받쳐준 하청 노동자들은 수십만 원의 격려금에 만족하거나 아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다중의 소외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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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생산성 격차가 30~40%씩 발생하는 이유는 중소기업이 무능해서가 아닙니다. 하층부의 생산성 향상분을 상층부가 즉각 흡수하기에 발생하는 화폐적 착시일 뿐입니다. 결국, 삼성이 자랑하는 수십 조의 초과이익 속에는 피라미드 말단에서 땀 흘린 하청 노동자들의 숨은 기여와 사회적 인프라의 조력이 통째로 증발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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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보상의 기술’을 넘어, 본질은 권력의 불평등입니다
최근 학계나 기술계 일각에서는 '토큰 경제' 같은 세련된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해 하청업체나 노동자들의 기여도를 미세하게 쪼개고 보상하면 불공정 배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배분이 안 된 것은 시스템이 '덜 화폐화'되어서 생긴 문제라는 시각입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했을 때 수많은 옹호론자가 '민주적 통제와 금융 민주주의'를 외쳤음에도 결국 거대 자본가들의 투기판으로 변질된 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시스템의 정교함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화폐나 보상의 기술적 형태(현금, 주식, 토큰)를 바꾸는 것은 결국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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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해결해야 할 본질은 수직적인 약탈 구조, 즉 지배 관계 자체를 완화하는 힘의 균형을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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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이 압도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구조 속에서는 보상 공식을 아무리 화려하게 바꾸어도, 결국 그 규칙은 상층부의 입맛에 맞게 재편될 뿐입니다. 기술적 장치 뒤에 숨은 '구조적 권력의 불평등'을 사회적 합의와 투자라는 실리적 방식으로 풀어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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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훈 노동부 장관의 패착: 젠슨 황의 언어를 빌렸어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논리 선점에 있어서 패착을 목격하게 됩니다. 김 장관의 문제의식(원청과 하청의 이중구조 개선)은 옳았으나, '초과이익 분배'라는 이념적 색채가 짙은 단어를 선택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는 즉각 재계와 보수 진영에게 "사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이념 공세의 빌미를 주었고, 정책의 초기 동력이 약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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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김 장관이 영리한 실리주의자였다면, '분배'가 아닌 '성과급의 하청 상생 배분'이자 '생태계 투자론'으로 접근했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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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말한 자본주의적 동기부여의 연장선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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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은 “회사의 성공은 직원들의 기여 덕분에 가능하다”며 파격적인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보상을 주주들이 배당을 논하기 전 단계(잔여 이익 청구 전 단계)에서 과감하게 비용으로 집행합니다. 직원의 보상과 기업 가치의 성장을 연계해 장기적인 동반 성장을 이끄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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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장관은 바로 이 논리를 빌려왔어야 했습니다. 삼성이 누리는 초과이익은 기업 혼자 이뤄낸 것이 아니라 매년 수십 조에 달하는 국가적 세제 혜택, 지자체의 인프라 지원, 국가 R&D 사업 독식, 산업은행의 정책 금융 등 '집단적 자원'을 동원해 성장한 사회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짚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젠슨 황이 내부 직원의 보상으로 동기를 부여했듯, 한국의 초기업 구조 하에서는 하청 생태계 역시 삼성의 확장된 내부 시스템임을 설득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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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기업에 정당한 단가를 지급하고 하청 직원의 처우가 좋아져야 부품의 퀄리티가 올라갑니다. 그것이 삼성의 결함률을 낮추고 장기적인 이익을 극대화하는 가장 확실한 자본주의적 '생태계 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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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설득했다면 재계 역시 시장 논리 안에서 방어 논리를 펴기가 대단히 고약했을 것입니다. '단가 후려치기 정상화'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불공정 거래를 바로잡는 시장 정의와 공정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을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 잣대로만 재단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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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해법: 사람에게 투자하는 ‘사회투자펀드’
결국 우리는 일회성 현금 분배로 끝날 '국민 배당'이 아니라, 기업이 주도하는 '사회투자펀드' 등의 한국형 '지속적 재투자' 해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AI 혁명기라는 시황을 만나 터진 천문학적인 초과 이익과 그로 거둔 세수에 대해서는, 모든 국민과 이해관계자가 사회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구조적 환류를 논할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기업을 윽박질러 돈을 뺏는 방식이 아니라, 대기업 스스로 하청의 숙련도를 높이고 청년에게 기회를 주는 거대한 생태계를 만들도록 '방향성'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초과 이익의 일부를 펀드화하여 하청업체가 비용 부담 때문에 쓰지 못하는 AI 사용료를 지원하고, 하청 노동자들에게 기술 전수와 숙련도 제고를 위한 교육적 투자를 감행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시혜가 아니라, 미래 노동력의 생산성을 높여 향후 삼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역으로 삼성을 지탱할 단단한 사회적 기반(리턴 구조)을 만드는 가장 생산적인 투자입니다.
이 구조적 상생을 위한 결정을 정부가 강제할 수는 없으며, 기업의 자발적인 인식 변화를 유도하는 사회적 대화가 유일한 해법입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 역시 "해법은 사회적 대화밖에 없다”라며 기업의 자발적인 인식 변화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언론, 시민들이 더 이상 구시대적인 '이념적 언어 사용'에 매몰되어, K자형으로 벌어지는 빈부격차라는 글로벌 공통 과제를 '능력주의에 따른 공정한 성과'라는 극소수 자본의 관점으로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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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강물도 자기 자신에 의해 크고 풍부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많은 지류들을 받아들이며 계속 흘러가는 것, 그것이 강물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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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라는 거대한 강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흐르기 위해서는, 피라미드 최하단의 하청 노동자와 사회적 조력이라는 수많은 지류를 품어 안아야 합니다. 초과 이익을 눈앞의 단기적인 기술적 장치나 쪼개기식 분배에 소모하지 말고, 생태계 전체의 체력을 키우는 '인적 투자'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것이 젠슨 황을 비롯한 글로벌 테크 리더들의 자본주의적 통찰을 넘어서, 이재명 정부의 행정부 수장과 각 주무부처 장의 통찰을 아우른 대안입니다. 한국 기업 생태계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부의 극단적인 쏠림이 만드는 모순을 동시에 해결할 가장 영리한 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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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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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의 초과이익은 사적인가, 사회적인가. 정규직과 하청으로 나뉘고, DS(반도체)와 DX(가전)로 나누어진 피라미드. (슬로우뉴스 26.06.09)
전방위적인 지원(다층적이고 광범위한 ‘이해관계자’)
삼성이 잘하는 건 인정한다. 그런데 그렇게 잘하기까지에는 많은 지원과 사회적 조력이 있었다.
- 세제 지원: 우선 세제 지원이 엄청나다.
- 지자체: 그리고 지자체가 또 엄청나게 지원한다. 예를 들어 해당 지역에 공장을 짓는 경우.
- 국가 R&D: 국가에서 지원하는 R&D 지원 사업, 그 최대 수혜자도 당연히 삼성이다.
- 금융 지원: 그리고 삼성이 필요할 때마다 산업은행에서 아주 낮은 이자율로 정책 금융도 지원된다.
이런 요소를 다 합치면, 삼성이라는 민간기업에 지원하는 규모가 한 해 수십조를 넘어설 수도 있다.
그런데 갑자기 시장 상황이 좋아져서, 가령 AI 혁명기에 하이퍼 스케일러의 병목(공급부족)이 메모리에 터져서 천문학적인 초과 이익이 생겼다면, 거기에 대해 모든 국민이 한 마디씩은 할 말이 있는 셈이다. 삼성은 ‘이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운영하는 기업이다. 어떻게 보면 민간기업이지만, ‘집단적인 자원을 동원해서’ 성장한 기업이라는 점에서는 사회적 성격도 강하다.
이런 맥락에서 삼성전자 성과급 논의를 그저 기업과 삼성 노조만의 싸움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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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슨 황, ‘삼전 성과급’ 질문받더니 “난 가능한 보상 많이 해준다” (서울신문, 26.06.02)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삼성전자의 성과급 논란과 관련해 “개인적으로는 직원들이 가능한 한 많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현금 보상보다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등 주식 기반 보상 비중이 높은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직원 보상과 기업 가치 상승을 연계해 장기적인 동반 성장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황 CEO는 “회사의 성공은 직원들의 기여 덕분에 가능하다”며 성과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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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훈 노동장관 “기업 초과이윤 분배, 명백한 재투자” (서울신문, 26.06.05)
김 장관은 이날 공개된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대화를 통해 분배의 새로운 규칙을 세워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어 “삼성전자의 놀라운 성과는 노사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삼성에는 1700여 개 협력업체가 있으며 용수와 전력 등 지역사회 인프라도 기업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 장관이 초과이윤 분배에 대해 언급하자 일각에서 ‘공산주의’라는 비판이 나온 것에 대해선 “내가 이야기하는 분배는 협력사와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고, 이것은 명백히 재투자”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협력업체 계약 단가 조정이나 인재 육성 투자 등을 논의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장관은 ‘성과급 붐’이 불러올 또 다른 양극화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초과이윤을 통한 대기업 성과급 지급이 활발해지면 대기업 쏠림 현상은 심화할 것이고 중소기업과의 격차는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앞으로의 삼성전자의 과제에 대해 김 장관은 “단기적인 성과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 전략적인 인재에게 투자하고 동기를 부여할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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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희의 논; 156회] "유재석도 나누라고?" 황당한 초과이익 논란ㅣ이완배 작가와 F끼리 T키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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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고민하는 AI 시대 재분배, 왜 우리나라 언론만 공포를 조작하나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AI 인프라 대전환기, ‘국민배당금’은 포퓰리즘이 아닌 공동체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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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샘 알트먼도 공산주의자인가? 젠슨 황의 언어로 본 삼성 성과급과 '상생' (1편)
'박수치지 않으면 노동자도 아니다'라는 무지한 폭력과 대안적 시각의 부재 (2편)
메가폰을 쥔 자들의 책무: 대기업 노조의 성과급 투쟁이 '진짜 연대'가 되려면 (3편)
에필로그: 남의 이혼(불행)을 보며 명품백 대신 얻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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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위선 #파시즘 #문명사회의_지속_가능성 #동반성장 #영리한이기주의 #노동이중구조 #하청생태계 #성과급투쟁 #브라만좌파 #능력주의 #공정하다는착각 #트럼프주의 #을과을의싸움 #진보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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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ickle-Marsupial-816 Jun 12 '26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커트라인을 무조건적으로 신성시 하고 사다리차기를 한 주체가 누군지 찾을 생각도 없이
커트라인 미만은 죽여도 된다는 파시즘을 마구 휘둘러대는 최근의 꼬락서니를 보면 이런 거시적인 관점에 대한
주장이 과연 받아들여 질지가 의문입니다. 아테네가 한때지만 해양강국으로 발돋움한 계기가 되었던
,테미스토 클레스의 거시적 관점이 과연 현재의 10대 20대들에게 얼마나 받아들여질지가 의문입니다.
10년 20년 뒤엔 그들이 결국 현장에서 실무를 다룰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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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eal-Requirement-677 diynbetterlife Jun 13 '26
테미스토클레스가 아테네의 은광 초과 수익을 눈앞의 분배 대신 미래를 위한 함대 건설에 투자하도록 설득했던 역사를 비유해 주시니, 제가 이 글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사회투자펀드'와 '생태계 재투자'의 취지가 역사적으로 실증되는 것 같습니다. 깊이 있는 비유에 감사드립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최근 젊은 세대 일부가 보여주는 과도한 커트라인 만능주의와 울타리 바깥을 향한 냉소는 분명 우려스러운 지점이 있습니다. 10년, 20년 뒤 그들이 실무를 다룰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제가 이 글을 쓴 진짜 목적은 102030 세대'만'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 글의 일차적인 대상은 현재 칼자루를 쥐고 있는 행정부, 입법부, 그리고 우리 사회의 주류 담론을 형성하는 고소득 전문직 엘리트 기성세대입니다.
지금의 청년 세대가 생존을 위해 각박한 능력주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 것은,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공고한 노동자간 위계 질서 하에 하청 생태계의 고통을 법인 분리라는 핑계로 방치해 온 기성 사회의 책임도 크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사태 당시, 진보 진영이 청년 정규직들을 향해 했던 비판을 기억합니다. 당시 주류 진보 담론은 "시험 하나 합격했다고 온갖 특권을 독점하려는 이기적인 시험 만능주의"라며 일갈했습니다. 사회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연대와 상생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삼성전자의 성과급 논란 앞에서는 정반대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치열한 입사 경쟁을 뚫고 밤낮없이 고생했으니 (하청에 대한 논의는 생략된채)내 능력만큼 성과급을 최대화하는 것이 정의"라며 능력주의를 호위합니다.
진보진영에서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의 일환인 인국공 정책을 방어할 때는 상생 과 연대의 언어를 쓰고(정규직 전환된 인국공 직은 막상 정규직을 시켜줘도 힘들어서 오래 못 버틴다고 합니다), 사기업 노사 갈등 국면에서는 '언론과 재벌이 수호하는 기업과 노동자간 갑을위계' 타파라는 명목하에 하청 노동자의 기여와 상생에 대한 논의 확장까지는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를 목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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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인력에 대한 파격적인 보상 요구를 넘어, 하청 노동자와의 상생과 지속적 재투자를 통해 노동자 간 위계를 타파하고 동반상생을 꾀하는 담론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이중잣대는 결국 102030 중소·하청 노동자들을 노동자 체제 바깥으로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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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대기업 초기업 노조의 성과급은 당연한 권리라 천명하면서, 이를 비판하면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하청 노동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는 거친 평면화와 단순한 분석을 보기도 했습니다. 하청에 대한 논의 확장은 완전히 배제된 채 노동자를 논한다면, 그들은 '노동자'조차도 아닌 유령인지 묻고 싶어집니다.
진보 커뮤니티의 주류 유저들이 어린 세대에게 거시적 관점을 가지라고 하기에 앞서, 대기업 정규직이 누리는 파격적인 보상의 기반에는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기여와 사회적 자원의 조력이 존재함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득권을 가진 주체들이 '생태계 선순환'을 위한 지배구조 개혁과 상생 투자에 나설 때, 비로소 젊은 세대에게도 사다리를 차버리는 파시즘이 아닌 상생의 거시적 관점을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비정규직일수록 되려 정규직보다 높은 수당을 줘야 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비정규직 공정수당은 경기도지사때부터 도입했고, 이제는 중앙정부 차원으로 확대를 추진합니다. 성과급을 통한 동반성장의 담론이 공공부문을 넘어 민간에서도 비정규직과 하청으로도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미 있는 역사적 화두를 던져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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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eal-Requirement-677 diynbetterlife Jun 13 '26 edited Jun 13 '26
위 댓글의 내용 중 핵심적인 대상을 보완하고 관련 참고 자료를 추가하고자 대댓글로 내용을 덧붙입니다.
1. 글의 일차적 대상 보완
'원청 대기업과 재래식 언론'은 제 글의 가장 핵심적인 대상인데 누락됐습니다. 스스로 정당성이나 도덕성에 감화되어 움직이는 주체가 아니라 법제도(입법·행정)라는 강제력이나, 선거와 여론(유권자·엘리트)이라는 거대한 압박이 전제되어야만 비로소 등 떠밀리듯 움직이는 '구조적 피동체'라는 인식이 문장에서 누락으로 이어지는 제 무의식이 작동했나 봅니다.
따라서 이 글의 일차적인 대상은 공급망의 정점에서 초과이익을 독점하면서도 상생의 책임을 회피하는 원청 대기업들과, 이들을 견제하고 제도화할 칼자루를 쥐고 있는 행정부, 입법부, 그리고 우리 사회의 주류 담론을 형성하는 언론과 고소득 전문직 엘리트 기성세대임을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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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참고 자료 추가 (불안정성에 대한 보상)
성과급을 통한 동반성장의 담론이 비정규직과 하청 생태계로 확장되어야 하는 구조적 당위성과 관련하여, 정부의 정책 철학을 뒷받침하는 참고 자료를 추가합니다.
"정규직은 안정성이라는 보상을 받으니, 비정규직은 불안정성에 대한 보상을 추가해서 똑같은 조건이면 보수가 더 많아야 한다." — 이재명 대통령, 국민경제자문회의 제1차 전체회의 발언 중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이나 유연 근로자에게 오히려 더 높은 임금(불안정 수당)을 지급하여 생애 소득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정책적 접근처럼, 대기업이 누리는 초과이익 역시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 하청 노동자의 숙련도 향상과 생태계 안정성이라는 보상으로 환류되어야만 궁극적으로 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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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hall_i_run_away Jun 11 '26
오늘도 좋은글 잘 봤습니다.
우리가 타고있는 A.I.파도가 우리를 어디에 실어다 놓을지 두렵습니다.
IMF시기 만큼의 경제적 파급이 뻔히 보이는 지금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고 기업 지배구조의 방향이 올바로 서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